日帝때 일본인들이 조선사람을 동원하여 女子분들은 나무를 심고 男子분들은 돌을 운반하여 석축을 쌓았다. 大正10년애ㅣ라고 하는 글귀가 보이는데 남원지역에 비가 많이 솔아저 산사태가 나면서 석축에 묻혀있던 곳이 씻겨저 글짜가 드러나고 남원지역에는 日帝와 악연이 많은 곳이며 南原읍성 사적 제298호를 점령하고 성가운대로 기차길을 내어 철마가 지나가며 죽은 귀신들도 나타나지 못하걔 잔인무도하계 악행을 저질렸다, 이곳에는 군, 관, 민이 한심하여 한몸 한뜻으로 굿게 뭉처 장열하계 전사한 만인위총 임니다, 주천면과 경개인 운봉면의 경개의 길이 200백미터 방죽을 파고 널비 40미터 깊이 40매타 정도에 방죽을 파고 돌로까근 목침 돌을 설치 했으며 지리산과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길목에 40매타에 방죽을 파니 땅속에서 피가 솟구치고 지리산이 3-4일간 울었으며 산사태가 나면서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이 긑꼇다고 한다, 위 일본사람들이 이곳에 목돌을 설치하는 이유는 지리산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절라북도를 끼고 있어 천하를 다스릴 인물이 3분이나 태어나기 때문에 사전에 제거 작없을 했던 곳이다, 남원 문화원에서 이돌은 운봉읍 신수일 집마당에서 옭겨와 노치마을 회관에 전시하는데 백두대간을 찻는 분들에계 경각심을 실어주기 위하여 선치하는데 일본사람들이 이럿계 만행을 저질렷다고 한다, 남원 만복사지 女스님 1500백명을 학살하고 화장을 하여 요천강에 뿌렀으며 운봉읍 화수리 황산대첩 사적 제104호를 파괴하고 낙동강 제방을 쌓은대 사용했으며 마을 주민들이 3매타정도 거북조각등을 모아 다시 고처 지은 집들이 황산대첩 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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