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후반 의천대각국사께서 칠구선원을 세우는 등 크게 선암사를 중찬하고 그 이후 전쟁과 화재 등으로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특이사항으로는 1761년 상원스님이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산명을 청량산, 사찰명을 해천사로 개칭하였다가 1825년 다시 사찰명을 선암사로 복칭하였습니다.

선암사의 일주문은 2022년 12월 28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이 일주문은 1540년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일주문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의 전화를 피해 유일하게 소실을 면한 건축물로서 조선 중기 건축물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그 역사적ㆍ학술적 가치 높습니다. 또한, 일주문 형식에서 양팔보형은 순천 선암사 일주문과 북한의 안변 보현사 일주문으로 남북한을 통틀어 2개의 사례가 존재하는 희귀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주문의 특이한 점은 일주문 앞쪽에는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라는 현판이 뒤쪽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涼山海川寺)’ 현판이 걸려있는 것입니다.
선암사에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형태의 승선교는 임진왜란 이후 선암사를 중건할 때 제작된 것으로 하나의 전설이 전해집니다.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길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 순간,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습니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하는 전설입니다. 무지개 모양의 형태는 보성 벌교 홍교와 같은데 돌을 사용한 방식이나 마무리 수법이 그보다 오래되어 그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동·서 삼층석탑은 승선교를 지나 마당에 가면 대웅전 앞에 놓인 탑으로 규모와 양식이 서로 같아 같은 제작 기법으로 제작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 양식을 잘 계승한 탑으로 9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다.

대각암 승탑은 의천대각국사의 유골을 모신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산으로 양식적 특징을 보았을 때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유산입니다.
선암사에는 앞서 말했듯 두 가지 창건 설화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만 두 설화 모두 조선시대의 기록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용으로 역사적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선암사 소개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