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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동탄호수공원 태봉산내 정숙옹주 태실비 민관합동 2차 조사2019-02-22 16:13
카테고리문화재지킴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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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갸륵한 효심 융건릉보다 
200여년 오래된...
431년 역사를 고이 간직한~~
동탄호수공원 태봉산내 정숙옹주 태실비에 대하여 민관합동 2차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화성시 향토문화재 지정등록을 위하여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2019.02.19)
(화성시, 경기도시공사, 역공생)


정숙옹주 태실비 (貞淑翁主 胎室碑)

위치: 경기도 화성시 송동 681-674 
(동탄호수공원 태봉산내)

정숙옹주(貞淑翁主,1587~1627)는 선조(宣祖 1552~1608)와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서3녀로 영의정을 지낸 신흠의 아들 평산인(平山人) 동양위 신익성(東陽尉 申翊聖, 1588~1644)과 혼인하여 5남 4녀를 낳았다. 

태실은 조선시대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태(胎)를 묻고 복을 기원했던 시설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정숙옹주 태실비는 동탄호수공원 제방 북쪽 태봉산(49m) 정상부 남향을 하고 있으며 태실은 보이지 않고 태실비만 남아 있다. 비는 영봉형 비두에 비좌를 갖추었고, 비두와 비신은 일체형으로 비좌에는 복련과 안상을 새겼다. 태실비의 크기는 비신과 비두를 합한 높이가 183cm, 비신 폭 47cm, 두께 15cm, 비좌 너비 95cm, 높이 43cm이다. 

비신의 정면에 [왕녀아지씨태실, 王女阿只氏胎室]이라 태실비 중앙에 세로로 각자 하였고, 후면에는 [황명만력십육년칠월십일일을시립, 皇明萬曆十六年 七月十一日乙時立]이라 각자되어 있음을 볼 때 조선 선조와 계비 인빈김씨(仁嬪金氏)의 4남 5녀 중 3녀인 정숙옹주의 태실비로 여겨진다.

전국에 수많은 태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절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정숙옹주의 태실도 역사의 질곡 속에 현재의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보아진다. 

한편, 동양위 신익성(東陽尉 申翊聖,1588~1644)은 조선의 문신이다. 선조의 딸 정숙옹주의 부군으로 자(字)는 군석(君奭), 호(號)는 낙전당(樂全堂), 본관은 평산이다.

12세에 정숙옹주와 결혼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으며, 광해군 때 폐모론을 적극 반대하였다. 1627년에 정숙옹주와 사별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서 왕을 모시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주화파 대신들이 세자를 적에게 인질로 보내 화의를 맺자고 주장하자 칼로 위협까지 해가며 반대하였다. 후에 시론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김상헌·최명길 등과 함께 선양으로 잡혀갔으나, 후에 소현세자의 덕으로 무사하였다. 효성이 지극하고 글과 글씨에 능했다. 저서로 《낙전당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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