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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무진주국가유산지킴이 2025년4월 정기활동(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생가)2025-04-22 18:13
카테고리문화재지킴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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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주국가유산지킴이 정기활동으로 오늘은 용아생가를 찾아 청소년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정화활동과 콩댐작업을 하였습니다. 도심속의 초가집을 유지한다는 것은 현대생활 시스템에서는 재료의 구입부터 전문적인 기술자를 찾는 자체가 쉬운일이 아니다.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시멘트와 슬레트 지붕으로 70년대 변화를 가져 왔으나, 문화유산의 원형보존을 위해 2000년 초반에 초가지붕으로 원복하여 관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꽃밭사이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2조로 나뉘어서 콩댐작업과 잡초제거작업을 하였습니다.

봉사활동 말미에는 전통놀이인 비사치기와 투호던지기로 세대간의 격차를 줄이고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소재한 용아생가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한국 현대 시의 시문학파를 형성하여 서정시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용아 박용철 시인의 생가입니다. 그의 고조부가 19세기 후반에 지었다고 하니 100년이 훨씬 넘은 고택입니다. 이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서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된 가옥입니다.

용아 박용철(朴龍喆, 1904년 6월 21일 ~ 1938년 5월 12)은 일제강점기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번역가연극운동가였습니다그는 시문학파의 중심 인물로서김영랑정지용 등과 함께 순수 서정시의 흐름을 이끌었습니다.

 

1916년 광주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휘문의숙과 배재학당에서 수학하며 지하신문 목탁을 발간하여 항일 독립정신을 키웠습니다이후 일본 도쿄의 청산학원에 다닐 때 김영랑과 교우관계를 맺으면서 문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이후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학과에서 수학하였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자퇴하였습니다

 

1930년대 초김영랑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여 순수 서정시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그의 대표작으로는 떠나가는 배가 있으며이는 일제강점기 민족의 현실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용아 박용철(朴龍喆, 1904년 6월 21일 ~ 1938년 5월 12)은 일제강점기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번역가연극운동가였습니다그는 시문학파의 중심 인물로서김영랑정지용 등과 함께 순수 서정시의 흐름을 이끌었습니다.

 

 

1938년 5월 12, 3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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